AI가 세계 무역 지도를 바꾼다…반도체에서 전력·산업 인프라까지 ‘융합경제’ 확산

세계 상품교역 성장률 전망 3.9%로 상향…AI 관련 제품 교역 급증

기술 보유보다 산업 간 연결이 경쟁력…한국, 반도체 넘어 에너지·로봇·소재 생태계 키워야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이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반도체 산업에 머물지 않고 데이터센터, 전력 설비, 통신망, 산업용 장비와 클라우드 서비스로 확산하면서 산업 간 경계를 허물고 있다. 개별 기술의 경쟁을 넘어 서로 다른 산업과 기술을 결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융합경제’가 글로벌 산업 지형을 재편하는 핵심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2026년 10월 발표한 전망에서 올해 세계 상품교역 증가율을 3.9%로 상향 조정했다. AI 관련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제품에 대한 수요가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관련 제품의 교역은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한 것으로 보도됐다. 중동 정세에 따른 교역 차질과 에너지 불안에도 AI 산업의 투자와 수요가 세계 무역을 떠받치는 새로운 축으로 부상한 것이다.

 

AI 경쟁, 반도체를 넘어 산업 전체로 번진다

이번 변화의 핵심은 AI가 더 이상 소프트웨어 기업만의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AI 모델을 학습하고 운영하려면 고성능 반도체와 메모리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 안정적인 전력 공급, 광통신망과 산업 설비가 함께 필요하다. 기술 경쟁이 물리적 인프라 경쟁으로 확대되는 이유다. S&P 글로벌은 10월 5일 분석에서 AI 투자가 메모리와 반도체를 넘어 데이터센터 부동산, 네트워크 장비, 산업용 설비, 전력 산업으로 파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AI의 성장 효과가 기술 개발 기업에만 집중되지 않고 이를 구현하는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는 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도 바꾸고 있다. 반도체를 잘 만드는 기업, 전력을 생산하는 기업, 로봇을 제조하는 기업이 각자 경쟁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 연산 능력과 전력 공급, 자동화 설비, 생산 데이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해 실제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중국은 AI와 제조업 결합에 속도를 낸다

중국도 기술과 제조업의 결합을 국가 산업전략의 중심에 놓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10월 9일 첨단기술 분야의 과잉투자를 경계하면서도 AI 핵심기술과 컴퓨팅 인프라를 강화하고, 산업 현장에 AI를 적용하는 시범기지를 조성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AI 기반 자동차와 로봇 등 지능형 제품의 보급을 확대하는 동시에 무분별한 투자와 산업 과잉 확장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첨단기술 산업의 육성뿐 아니라 기술을 기존 제조업에 실제로 적용하고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WEF)도 2026년 기술 융합 보고서에서 AI, 로봇, 첨단소재, 공간지능, 차세대 에너지 등 여러 기술을 결합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확장할 수 있는 역량이 경쟁우위를 결정한다고 분석했다. 단일 기술의 우수성만으로는 산업적 성과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융합경제의 그늘…성장의 과실은 어디로 가는가

그러나 AI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다고 해서 그 성과가 모든 국가와 기업에 고르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10월 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6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AI가 무역과 산업의 역동성을 높이고 있지만, 첨단기술 분야의 이익과 고부가가치 투자 기회는 일부 국가와 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첨단 AI 서버의 가치사슬 분석에서도 기업의 이익과 노동소득 사이에 상당한 격차가 나타났다.  이는 융합경제 시대의 새로운 과제를 드러낸다. 기술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핵심 부품과 소재, 데이터, 지식재산권, 생산설비, 서비스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이 성장해도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외부에 내줄 수 있다. 특히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수록 전력 확보와 설비 투자 부담도 커진다. 기술 개발 속도와 실제 수익 창출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 경우 투자 과열과 자산가격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융합경제는 새로운 기회인 동시에 투자 역량과 산업 기반의 차이를 확대할 수 있는 구조적 변화다.

 

한국, 기술 강점의 나열에서 산업 생태계의 연결로

한국에 주어진 과제는 분명하다. 반도체, 배터리, 조선, 자동차, 로봇, 방산, 에너지 등 개별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각 산업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연결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전략이 필요하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에너지 저장장치, AI와 산업용 로봇, 첨단소재와 항공우주·방산을 연계하면 기존 산업의 강점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방산 분야에서도 AI 소프트웨어만 개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센서, 반도체, 통신, 로봇, 소재, 보안 기술을 통합해 실제 운용 가능한 체계를 구현하는 기업이 더 큰 시장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지역 산업정책 역시 같은 관점에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특정 기업이나 단일 업종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개발, 부품·소재 공급, 시험·인증, 생산, 인력양성, 사업화와 수출 지원을 연결해야 한다. 산업 간 연계가 실질적인 거래와 생산으로 이어져야 지역의 성장 기반도 지속될 수 있다.

 

결국 융합경제의 승자는 가장 많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아니라 기술을 결합해 고객이 구매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로 구현하는 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정책도 투자 규모와 기술 개발 실적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산업 간 협력, 생산성 향상, 시장 진입과 수익 창출을 함께 살펴야 한다. AI가 세계 무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는 지금, 한국의 경쟁력은 개별 산업의 순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반도체를 전력과 연결하고, AI를 제조업과 연결하며, 소재·로봇·우주·방산을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능력. 그것이 융합경제 시대의 새로운 경쟁력이다.

작성 2026.10.10 11:15 수정 2026.10.1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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