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면산에서 한성 백제를 보다
우면산 상에 올라 서울을 보며 한성 백제의 수도 한산의 넉넉한 품이 한눈에 보인다. 우면산(牛眠山)은 소가 잠자는 모습의 산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산 지맥이 암소가 앉아 되새김질하는 평화로운 전경의 산이다. 그 머리 아래 들판에 한성 백제의 수도 한산(漢山)이 펼쳐져 있다. 우면산은 한성 백제의 번영을 누린 기운이 서린 암소이다. 온조왕이 한강 변에 토성을 쌓고 건국 이후 백제는 마한 땅을 흡수하여 번성하였다.
한성 백제는 13대 근초고왕 때 가장 화려한 국운을 맞았다. 고구려를 침범하여 승복시킨 국력이었고 중국으로 진출하여 산둥 백제를 건설하고 고구려와 맞먹는 국력을 유지했다. 14대 근구수왕, 15대 침류왕, 16대 아신왕으로 이어지면서 중국과 일본에 식민지를 둘 만큼 비대했다.
근초고왕의 손자 침류왕 384년엔 동진의 고승 마라난타가 불교를 가지고 전남 영광의 법성포로 와서 불갑사(佛岬寺)를 짓고 불교를 전파한다. 침류왕은 당장 고승을 한산으로 불러들여 우면산에 대성사를 지어 불교를 국교화하여 전파케 하였다. 이에 토속 종교를 숭상하던 백성들의 반발이 컸다. 마침내 침류왕은 취임 2년 만에 살해당한다. 그러나 불교는 국교로 승인되어 번성을 누렸다.
마라난타는 백제로 오면서 엄청난 불경을 가지고 왔고 전파하였고 상사화(꽃무릇)란 꽃씨를 가지고 와서 절에 심어 불도를 상징화하였다. 꽃무릇은 용천사, 선운사로 전파되어 모든 절에 꽃무릇이 피었다. 이 꽃은 침류왕과 마라난타의 슬픈 애증이 서린 꽃이 되고 말았다. 상사화(相思花), 꽃대와 꽃잎이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비련의 사랑을 침류왕과 마라난타의 생이별에 비유하였다. 백제불교 발상지는 불갑사지만 국찰은 우면산 대성사(大聖寺)였다.
우면산의 수맥과 혈맥이 끊기다
언제나 산에 오르면 암소의 숨소리를 듣는다. 산은 살아있는 생물에 비유한다. 모든 생물은 움직이지만, 산은 움직이지 않는 생물이다. 산을 사람의 체형에 비유하는 것은 사람의 몸에 혈관이 있어 피가 흐르고 피는 영양분을 공급하여 생명을 지탱케 한다. 산에는 인체와 같이 수맥이 있어 물이 흐르고 토양의 영양분을 날라 나무와 풀을 성장시키고 그 숲의 토양으로 많은 생명체가 자란다. 산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여 숲을 만들고 그 숲에 생물이 자라는 것이다.
우면산에 오르면 한산 백제의 숨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한성 백제를 상징하는 산이다. 숲의 냄새가 유난히 상쾌하다. 바람소리, 상큼한 공기, 확 트인 시야, 그리고 정상에 오르면 성취감과 정복감이 왜 그리 충만 되는지 모른다. 산상에 서 본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다. 우면산은 풍수지리학적으로도 혈맥이 튼튼한 산으로 백제의 번성을 누렸다. 장수왕은 아차산은 쳤지만, 우면산은 치지 못했다. 우면산 정상에 오르며 서울시가 한눈에 보인다. 너무나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이었다.
그만큼 우면산은 한산을 품어 풍요를 누리는 배산이며 이산을 거쳐 백제는 남으로 뻗어나갔다. 청계산과 관악산의 흉기를 막아주는 배산이었다. 그리고 강남지맥이란 혈맥을 지녀 편안하고 따사함으로 산책과 등반, 무장애 시설 등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산이다.
그러나 잠시 우울한 생각에 젖는다. 우면산은 역사적으로 그렇게 정겨운 산은 아니었다. 조선 역사의 한을 표상하는 비극들이 서린 산이었다, 이방원의 왕자의 난 때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인 삼봉 정도전을 죽여 버린 산이다. 이성계는 막내아들 방번을 후계왕으로 옹립하려는데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번을 죽이고 정도전도을 태워서 그의 시신을 목과 몸통으로 분리하여 우면산에 던졌다. 그리고 왕자의 난 때 파벌 다툼이 피로 얼룩진 곳이었다
그런데 다시 태종은 후계자 책정에서 장자인 양녕대군을 밀어내고 세종에게 왕위를 승계하자 양녕대군은 슬픈 고배를 마시고 우면산에 기거하다가 관악산으로 올라가서 연주대에 자리를 잡고 조선을 원망하였고 효령대군은 왕위에서 밀려 방배동에 자리 잡고 우면산을 오르내리며 한을 삭이다가 의왕시 모락산 자락에 집을 짓고 한양을 등지고 살았다. 청계산과 관악산은 조선을 증오한 산이다. 관악산엔 양녕대군의 저주가 있었고 청계산엔 고려의 두문동 유신들이 도망을 와서 숨어 살면서 조선을 저주하였다. 우면산은 두산의 한을 방패한 산이었다.
우면산이 울고 있다
우면산은 서울의 관문인 산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 땐 말죽거리가 있어 한양을 오가는 인사가 여숙을 하였고 현재엔 남쪽으로 통하는 도로가 뚫려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암소가 누워서 부른 배를 되새김질하는 평화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온몸이 절단되는 아픔을 맞았다.
양재동은 소의 얼굴인데 잘려서 양재 대로가 생겼고 암소의 목엔 경부고속도로가 관통하여 머리와 몸통이 분열되었고 소꼬리인 남태령이 잘려 관악산의 혈기가 사라져 운신을 못 하게 되었고 서초 과천 터널이 관통하여 소의 심장을 가르는 아픔을 겪은 산이다.
암소가 누워서 울고 있다. 아무튼 우면산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한산으로 흐르는 지맥과 수맥이 끊게 물과 영양분을 공급 못해 활기찬 기상을 잃어버린 암소가 되어 안타깝다. 다행히 우면산 자락의 국립 국악원에서 울리는 풍악이 산의 맥을 달래는 위안이 되어서 그나마 한을 치유하는 것 같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