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넘는 법, 자유의 경계

EU·중국 규제의 역외 적용 논란

국가 주권과 표현의 자유 충돌


국가의 법과 규제가 국경을 넘어 외국 기업과 개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초국가적 법 집행’이 국제사회의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 플랫폼 규제와 중국의 해외 반체제 인사 압박,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둘러싼 미국의 반발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각국은 자국의 안보와 사회질서, 인권 보호를 이유로 규제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자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국가 주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있다.

 

<이미지:AI image.antnews>

EU는 디지털서비스법(DSA)을 중심으로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불법 콘텐츠와 허위정보, 온라인 위험에 대한 관리 책임을 강화해 왔다. EU 역내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플랫폼을 대상으로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해외 플랫폼 기업도 EU의 규제 체계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문제는 유럽에서 설정한 콘텐츠 규범이 글로벌 플랫폼의 운영정책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실상 유럽의 규제 기준이 다른 지역 이용자에게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헌법상 핵심 권리로 폭넓게 보호하고 있어 유럽식 콘텐츠 규제와 미국의 법적 기준 사이에 충돌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영국에서도 온라인 게시물의 국경을 초월한 법적 책임 문제가 논쟁의 대상이 됐다. 2024년 영국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둘러싸고 영국 당국은 온라인상 선동과 폭력 조장을 강하게 경고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에서 작성된 게시물이 영국 내 범죄와 연결될 경우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논란도 나타났다.

 

중국의 사례는 성격이 더욱 민감하다. 미국 법무부 등은 중국 정부와 연계된 인사들이 미국 내에서 중국 정부가 추적하는 인물들을 압박하거나 감시하려 한 사건들을 수사해 왔다. 미국 정부는 이를 ‘초국가적 탄압(transnational repression)’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해외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와 중국 정부 비판자들을 대상으로 협박과 감시, 가족을 통한 압박 등을 활용한다는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중국의 해외 활동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해외 경찰서’ 문제도 논란이 됐다.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중국 공안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해외 거점이 자국 영토에서 활동했다는 의혹을 조사하거나 관련자를 기소한 사례가 있다. 미국 법무부 역시 중국 정부를 대신해 미국 내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거나 괴롭힌 혐의로 중국 국적자들을 기소한 바 있다.

 

중국의 법률이 해외에 있는 개인이나 조직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점도 논쟁거리이다. 중국은 국가안보와 국가적 단결, 분열주의 대응 등을 명분으로 관련 법률의 적용 범위를 넓혀 왔다. 이 같은 법률 체계가 해외에서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인이나 학자, 시민단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대만과 홍콩, 신장 문제 등을 둘러싼 표현이 중국의 국가안보 법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표현의 자유 논쟁으로 연결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를 둘러싼 갈등 역시 초국가적 사법권 문제와 맞닿아 있다. ICC는 로마규정에 가입한 국가를 중심으로 국제범죄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는 국제 사법기관이다. 미국은 로마규정 당사국이 아니며, 미국 정부는 자국민에 대한 ICC의 관할권 확대에 강한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ICC가 미국과 동맹국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ICC 관계자에 대한 제재 조치를 취한 바 있다.

 

결국 한 국가의 기업이 다른 국가의 규제에 의해 거액의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반대로 국경 밖에서 활동하는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감시와 압박이 국가 안보라는 명분 아래 확대될 경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침해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초국가적 법 집행의 확대는 국제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기업의 성장으로 국가의 규제 권한이 국경 안에만 머물기 어려워졌고, 국제범죄와 인권 문제 역시 국가 단위의 사법체계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국가마다 표현의 자유와 사법권, 국가안보에 대한 기준이 다른 만큼 특정 국가의 법적 기준이 국제적 표준으로 사실상 확산되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논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EU의 디지털 규제, 중국의 해외 영향력 행사 논란, ICC를 둘러싼 미국과 국제사회의 충돌은 서로 다른 사례이면서도 ‘국가의 법적 권한은 국경 밖에서 어디까지 행사될 수 있는가’라는 공통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초국가적 규제가 국제적 책임을 강화하는 장치가 될 것인지, 아니면 강력한 국가나 국제기구의 기준이 다른 국가와 개인에게까지 강제되는 새로운 법적 질서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되고있다.




 

작성 2026.09.23 08:19 수정 2026.09.23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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