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은 법학박사로서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대한케어복지학회 회장, 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한국공공정책신문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률과 행정, 사회복지를 연결하는 관점에서 공공정책을 연구하고, 지방자치와 의정활동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교육에 힘쓰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돌봄을 가족의 사적 부담이 아닌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적 과제로 바라보며, 지속가능한 돌봄체계를 위한 제도적·재정적 대안을 제시한다.
아픈 부모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장애가 있는 가족의 하루를 책임지느라 자신의 건강과 노후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도 떠올려 보자.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감당할 수 있는 시간·체력·경제력은 서로 다른 문제다. 사랑이 깊다고 하루가 길어지는 것은 아니며, 책임감이 강하다고 간병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돌봄의 한계에 부딪힌 가족에게 더 큰 헌신을 요구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돌봄정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족의 역할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서로를 돌보면서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는 뜻이다. 돌봄을 받는 사람의 존엄과 돌보는 사람의 삶은 함께 보호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의 희생을 다른 한쪽의 생존 조건으로 삼는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돌봄은 국가 책임이며, 결코 '시혜'가 아니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국가의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 의무를 규정한다. 이 조항이 모든 돌봄서비스의 무상 제공을 곧바로 명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가족의 형편과 시장의 구매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법정책적 출발점은 분명하다. 돌봄의 국가책임은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겨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작동시키는 책임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제도적 전환을 시작했다. 2026년 3월 27일부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고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한 노인과 장애인 등이 살던 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의료·요양·돌봄을 연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병원과 시설 중심의 대응을 넘어 일상생활의 지속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다.
보건복지부가 2026년 7월 2일 발표한 시행 초기 실적에 따르면, 6월 26일 기준 신청·접수를 마친 사람은 4만 6,215명이며, 이 가운데 3만 7,304명이 서비스를 연계받았다. 제도가 현장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의미 있는 신호다. 다만 서비스가 연결됐다는 행정적 기록과 필요한 돌봄이 충분히 제공됐다는 생활의 경험은 구분해야 한다. 신청 이후 실제 서비스가 시작되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야간과 주말에도 공백이 없는지, 가족의 부담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돌봄통합지원법 제4조 제4항은 지방자치단체가 통합지원의 여건과 체계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국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명시한다. 중앙정부가 제도를 설계한 뒤 집행과 부담을 지방에 넘기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법률에 국가의 책무를 적었다면 예산과 인력, 서비스 공급능력으로 그 내용을 채워야 한다.
사는 지역에 따라 돌봄의 권리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
국가책임을 실질화하려면 먼저 전국 어디서나 보장해야 할 필수 돌봄의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어떤 상태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지, 필요한 서비스를 어느 기간 안에 제공할 것인지, 제공이 어려울 때 어떤 대체지원을 마련할 것인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용자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서비스가 중단되는 경우에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는 절차도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기준은 행정이 관리하기 편한 분류보다 당사자의 실제 필요를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족에게 충분한 돌봄 능력까지 있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가족의 건강상태와 취업 여부, 함께 거주하는지, 돌봄이 필요한 시간과 강도는 각각 다르다. 소득은 비용 부담을 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지만, 돌봄의 필요성 자체를 지워버리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재정의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한다. 지역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필수 돌봄의 수준까지 지방재정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는 기본적인 서비스 공급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고령화 수준과 장애인 지원 수요, 의료·돌봄기관의 접근성, 지방재정 여건을 반영해 지원을 차등화해야 한다. 동일한 금액을 배분하는 형식적 균등보다, 필요한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실질적 형평이 중요하다.
통합돌봄의 실효성을 위해 지역별 재정과 기반시설 수준에 따른 격차를 줄이는 중앙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방정부의 실행 역량과 국가의 지원 책임은 서로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강화되어야 하는 관계다. 지역이 주민의 필요에 맞는 서비스를 설계하되, 국가가 그 서비스를 실행할 토대를 보장해야 한다.
재정 지속가능성 역시 외면할 수 없다. 다만 공공예산을 줄였다는 사실만으로 사회 전체의 부담까지 줄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부담이 가족의 간병비와 소득 상실, 휴식 없는 노동으로 옮겨졌는지 함께 따져야 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관련 보험제도의 비용 분담을 명확히 하고, 중기 재정계획에 서비스 확충과 인력 확보 계획을 연결해야 한다. 돌봄을 해마다 예산 사정에 따라 흔들리는 사업으로 운영해서는 국민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기 어렵다.
통합해야 할 것은 조직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활이다
통합돌봄의 성패는 여러 기관의 이름을 하나의 조직도에 넣는 데 있지 않다. 한 사람이 퇴원한 뒤 식사를 준비하고, 약을 챙기고, 씻고, 진료를 받으며 생활하는 과정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상담창구를 하나로 만들었더라도 이용자가 다시 여러 기관에 같은 사정을 설명하고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면, 통합의 부담을 여전히 주민에게 떠넘기는 셈이다.
지방자치단체에는 개인별 지원계획을 실제 서비스로 연결하고 끝까지 점검하는 조정 역량이 필요하다. 퇴원 전부터 의료기관과 지역의 돌봄 담당자가 협력하고, 서비스 제공기관이 바뀌거나 담당자가 부재한 경우에도 지원이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신청이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는 체계와 긴급한 공백에 대응하는 대체서비스도 갖추어야 한다. 어느 기관을 방문했느냐에 따라 지원의 출발점이 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용자 중심 행정이다.
여기서 국가책임을 모든 돌봄기관의 국영화와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공공기관과 민간기관, 비영리단체가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공급 주체가 다양하다는 이유로 책임의 소재까지 흐려져서는 안 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서비스의 질과 안전을 감독하고,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지역이나 돌봄 난도가 높은 영역에는 공공의 공급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서비스를 누가 제공하든, 필요한 돌봄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책임은 공공에 남아 있어야 한다.
돌보는 사람을 보호해야 돌봄도 지속된다
돌봄인력의 처우는 복지정책의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적정한 보수와 안전한 노동환경, 교육과 경력개발, 휴식과 대체인력 확보는 서비스의 질을 지탱하는 조건이다. 예산과 계약을 설계할 때부터 이러한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 현장 종사자의 헌신으로 제도의 빈틈을 메우게 하면서 양질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가족돌봄자 역시 지원의 대상이어야 한다. 단기보호와 긴급돌봄, 휴식지원과 상담을 필요한 시기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돌봄으로 학업이나 경제활동이 중단되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 가족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지원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서비스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지원금이 가족에게 돌봄을 계속 전담시키는 명분이 되지 않도록 실제 서비스와 결합해야 한다.
돌봄받는 당사자의 선택도 존중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도록 지원한다는 목표가 집에서 버티도록 강요하는 정책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경우 의료기관이나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상태와 선호에 따라 지원 방식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비용 절감이 당사자의 안전과 자기결정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
지방의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조례를 제정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비스 대기기간과 중단 사유, 지역별 공급 격차, 가족의 돌봄 부담을 점검해야 한다. 사업 실적이 저조한 지역에는 원인을 진단하고 역량을 보강해야지, 단순히 예산을 줄여 주민이 이중으로 불이익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예산의 집행률보다 주민의 생활이 얼마나 안정됐는지를 묻는 의정활동이 필요하다.
돌봄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조건이다. 지금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생활하는 사람도 질병과 사고, 노화 앞에서는 돌봄이 필요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돌봄정책은 특정 집단을 위한 예외적 배려가 아니라, 국민이 자신의 미래를 불안만으로 바라보지 않도록 만드는 공동의 기반이어야 한다.
국가가 돌봄을 책임진다는 것은 가족을 대신해 사랑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가족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생계와 건강, 자신의 삶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이다.그 약속은 선언문이 아니라 법과 예산, 전문인력과 끊김 없는 서비스로 증명되어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에도 존엄을 잃지 않는 사회, 돌보는 사람도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국가가 감당해야 할 돌봄의 책임이다.
▷법학박사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대한케어복지학회 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저서> 「주민참여예산의 이해와 운영 전략」 (2026,공저)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