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한 식탁은 정직한 먹거리에서 시작된다."
현대인의 식탁은 어느 때보다 풍성해졌지만, 먹거리의 생산 과정까지 관심을 두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농산물이 어떤 환경에서 재배됐고 어떤 방식으로 관리됐는지는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충남 부여의 한 산골에서 '정직한 농사'를 실천하고 있는 농부가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의 작은 농장인 원각당농장을 운영하는 이상규 대표는 40여 년 동안 교육공무원으로 재직한 뒤 제2의 인생을 농업에서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계기로 먹거리의 중요성을 다시 바라보게 됐고, 이후 스스로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을 직접 재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교단을 떠난 뒤 시작된 새로운 도전
이상규 대표는 오랜 기간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활했다. 정년을 앞두고 건강 문제를 겪으면서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됐고, 무엇보다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식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당시 경험을 계기로 "몸을 이루는 것은 결국 매일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퇴직 이후 도시를 떠나 직접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대규모 영농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하면서 원각당농장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부여 산골 최상단에 자리한 청정 재배지
원각당농장이 위치한 충남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는 산림이 둘러싸인 지역으로, 농장은 마을 상단부에 자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러한 입지가 외부 오염원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지역적 특성은 작물 생육에 영향을 주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마늘과 양파, 서리태, 참깨 등은 생육 과정에서 일정한 기후 조건이 품질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각당농장에서는 농업용수로 지하 약 10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사용하고 있으며, 물 관리 역시 재배 과정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관리하고 있다.
첫 농사부터 맞닥뜨린 예상치 못한 시련
농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어려움은 자연재해였다. 첫 재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해,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농장 일부가 침수되고 시설물이 피해를 입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둑이 무너지고 하우스 내부까지 물이 유입되면서 상당수 작물이 피해를 입었다. 이 대표는 당시를 돌아보며 자연 앞에서는 사람의 힘이 얼마나 작은지 절실히 느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피해 복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침수된 토양을 정비하고 무너진 시설을 다시 세우며 다음 농사를 준비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배수시설과 재배환경을 더욱 꼼꼼하게 관리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교육자의 신념이 만든 농사 원칙
이상규 대표는 원각당농장의 가장 큰 경쟁력을 '많이 생산하는 농사'가 아닌 '믿고 먹을 수 있는 농사'라고 설명한다.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방식보다 소비자가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재배 과정을 우선하는 것이 농장의 운영 원칙이다. 그는 오랜 기간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정직과 책임을 강조했던 경험을 농업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농산물은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는 만큼 생산 단계부터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철학이다.
"먹거리는 사람의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생산자 스스로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직접 먹을 수 없는 농산물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원칙 아래 원각당농장에서는 재배 과정 전반에 걸쳐 불필요한 농약 사용을 줄이고, 작물의 생육 상태를 지속적으로 살피며 관리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농산물의 안전성과 품질을 함께 고려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자연의 시간을 존중하는 소규모 재배
원각당농장은 대량 생산보다 적정 생산을 지향한다. 생산량 확대보다는 재배 품질을 우선하는 방식이다. 현재 농장에서는 마늘, 양파, 참깨, 서리태 등을 중심으로 계절에 맞춰 재배하고 있으며, 작물별 생육 특성을 고려해 관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작물이 충분히 성장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농사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완성하는 일이다. 농부는 자연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러한 철학은 농장의 규모를 무리하게 확대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관리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재배해야 품질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암 투병 경험이 남긴 삶의 변화
이상규 대표는 자신의 건강 문제를 계기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회상한다. 그는 무엇보다 일상의 식습관과 생활 습관을 돌아보게 됐으며, 이후 먹거리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자신의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건강 관리와 질병 치료는 반드시 의료진의 진단과 치료를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업을 시작한 이유 역시 특정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가족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직접 생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작은 농장이 전하는 가치
오늘도 충남 부여 외산면 문신리의 산자락에서는 하루가 이르게 시작된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밭으로 향하는 이상규 대표는 작물 하나하나를 살피는 일부터 하루를 연다. 그에게 농사는 단순한 생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정년 이후 시작한 두 번째 인생에서 그는 빠른 성장보다 꾸준함을, 화려한 성과보다 신뢰를 선택했다. 원각당농장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생산자의 철학과 책임감을 담아낸 농산물을 통해 소비자와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소비자는 생산자의 철학과 재배 과정을 확인하며 농산물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지역 농업의 가치와 소규모 친환경 재배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원각당농장은 특별한 기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생산자가 책임질 수 있는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이상규 대표는 오랜 교육 현장에서 지켜온 정직과 책임의 가치를 이제는 농업을 통해 실천하고 있으며, 이러한 철학은 지역 농업과 소비자 신뢰를 연결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