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한국정책연구원장은 노동법을 전공한 법학박사로서 근로자 권익 보호와 노동현장 안전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다. 과거 서울특별시 옴부즈만으로 활동하며 시민의 권익 보호와 행정의 현장성을 점검해 왔고, 폭염 대비 사업장 행동요령의 준수 여부를 직접 확인한 바 있다. 현재는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위원장과 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시민 참여와 공공정책의 실효성 제고에 힘쓰고 있다.
폭염이 더 이상 계절적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올해 일 최고 체감온도 38℃ 이상 또는 일 최고기온 39℃ 이상이 하루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발령하는 ‘폭염중대경보’를 신설했고, 최근에는 폭염 재난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하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와 농민, 고령자들이 더위를 견디며 일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재난은 경보를 내리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 피해를 줄이는 데서 비로소 대응이 완성된다.
폭염은 이제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된 공공재난이다.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3℃ 이상 작업장소에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부여하도록 산업안전보건규칙에 반영했고, 35℃ 이상에서는 더 강한 휴식 권고와 옥외작업 관리가 필요하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현장에서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민간 건설현장, 농촌, 이동노동 영역에서는 “쉬면 소득이 줄고, 멈추면 일감이 끊긴다”는 현실이 제도보다 강하게 작용한다.
현장에 맞는 대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폭염 대응을 ‘주의보 전달’ 수준에서 ‘작업·소득·건강을 함께 지키는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다. 단순한 권고로는 현장 실효성이 떨어진다.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되면 일정 기준 이상의 옥외작업은 원칙적으로 중단하고, 그에 따른 손실을 일정 부분 공적 재정으로 보전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 현장에서는 중지 시 보완 조치가 운영되지만, 민간부문까지 포괄하는 안전망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
또한 폭염 피해는 노동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농촌에서는 고령 농업인이 무리하게 작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고, 축산·가축 분야에서도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 정부가 폭염에 따른 가축 폐사와 농업 피해를 집중 점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예방시설과 냉방장비, 쉼터 접근성, 인력 대체수단이 여전히 부족하다. 농업과 축산을 재난의 사각지대가 아니라 별도 정책대상으로 보고, 현장형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정책대안을 제시
첫째, 폭염 시 작업중지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현재 체감온도 33℃ 이상에서 2시간마다 20분 휴식이 의무화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폭염경보 및 폭염중대경보 단계에서는 옥외작업 중지 기준을 더 명확히 하고, 특히 건설·물류·택배·농업처럼 고위험 업종은 별도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작업중지로 인한 소득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
폭염 때 쉬라고만 하고 생계는 각자 책임지라고 하면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문에도 일정한 휴업보상, 재난기금 지원, 보험 연계가 필요하다. 폭염 대책은 안전대책이자 생계대책이어야 한다.
셋째, 취약계층 맞춤형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는 취약계층을 유형별로 나눠 맞춤형 안전관리를 확대하고, 무더위쉼터와 냉방물품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접근성이다. 쉼터의 수만 늘릴 것이 아니라 운영시간, 위치, 냉방 상태, 대중교통 연계까지 함께 개선해야 한다.
넷째, 도시와 농촌의 열 환경을 바꿔야 한다.
폭염 대응은 단기 대응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쿨루프, 차열도장, 그늘막, 가로수, 냉방시설, 전력 피크 관리 같은 기후적응형 인프라를 상시 재난사업으로 편성해야 한다. 폭염은 반복되는 재난이므로, 한 해 예산으로 끝내지 말고 중장기 기후적응계획 속에 넣어야 한다.
다섯째, 피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사후보상을 제도화해야 한다.
온열질환, 노동재해, 농업피해, 가축폐사 등 폭염 피해를 분리해서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 해 예산을 피해 규모에 맞게 편성할 수 있고, 어디에 어떤 지원이 부족했는지 평가할 수 있다. 재난은 기록되어야 개선된다.
재난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폭염은 개인의 체력으로 버틸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작업을 조정하고, 쉬게 하고, 보전하고, 보호해야 하는 공공안전의 문제다. “참으라”는 행정으로는 인명피해를 줄일 수 없다. “멈추게 하고 지키는 행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폭염은 매년 반복되는 상수가 된다. 그렇다면 대책도 임시방편이 아니라 상시 시스템이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폭염을 여름철 이벤트로 보지 말고, 노동·농업·복지·재난안전을 아우르는 통합 정책으로 다뤄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필요한 재정과 권한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법학박사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장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저서> 「지방의회 운영실무」 (2026,공저) 등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