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업인이 가지를 수확하면서 “가지가 정말 크게 나왔어요. 내가 심었어요. 정말 기뻐요.”라고 하면서 필자는 그 가지를 받아서 가지 탕수육을 해먹은 적이 있다. 먹으면서 그 농업인의 기쁨이 전달되서인지 더욱 맛있게 느껴지면서 정말 행복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그 반대는 어떨까? 최근 기후위기로 농업인들이 울상인데 그 힘듬의 가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생태심리학자들은 인간이 흙을 만지고 생명을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정서적 유대감을 '바이오필리아(Biophilia, 생명사랑)' 개념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생명체와의 연결을 갈구하며, 농업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하는 가장 강력한 행위다.
농업 경제학 및 사회학 연구에 따르면, 농업 종사자들이 느끼는 직무 만족도와 스트레스는 단순한 소득 수준과 비례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는 농부에게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유사한 심리적 타격을 준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쓰러지는 벼를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은 자식이 병들어 가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심정과 닮아 있다.
반대로 정상적인 수확에 성공했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과 정서적 충만감은 어떠한 물질적 보상과도 비교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농업의 가치를 단순히 GDP 수치로만 환산하는 것은 심리적 자산 손실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라고 지적한다. 농업이 가진 치유적 기능, 즉 '치유농업(Agro-healing)'이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흙을 일구고 정성을 들이는 과정 자체가 인간의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시키는 강력한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우리는 왜 인정해야 하는가?
농업은 단순한 제조공정이 아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은 투입된 원자재와 시간만큼 정확한 결과물을 보장한다. 하지만 농사는 다르다. 농부가 아무리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간다.
농부는 씨앗을 심는 순간부터 수확에 이르기까지 수개월 동안 불확실성과 싸운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잡초를 뽑고, 가뭄에는 물을 대며, 병충해를 막기 위해 밤잠을 설친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노동력 투입이 아닌,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정성의 집약이다.
수확 실패가 주는 허탈감이 그토록 잔인한 이유는, 거기에 농부의 '지나간 시간'과 '쏟아부은 마음'이 그대로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붉게 익은 결실을 손에 쥐었을 때의 환희는 단순한 물질적 획득이 아니다. 자신의 정성이 정직하게 결실을 맺었다는 존재론적 승리감이자, 자연과의 깊은 교감이 완성된 순간이다.
따라서 우리가 농산물의 가치를 논할 때, 단순히 '킬로그램당 얼마'라는 경제적 수치로만 평가하는 것은 농업의 본질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농부의 시간, 정성, 그리고 정서적 투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식탁위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연대와 존중
우리는 식탁 앞에서 얼마나 자주 그 음식의 뿌리를 생각하는가? 오늘날의 현대인은 너무나 쉽게 음식을 버리고, 농산물의 가치를 헐값으로 매기며, 농부의 노고를 잊고 산다.
이제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식탁 위에 올라온 작물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이 아니라, 한 인간이 계절을 견뎌내며 지어 올린 심리적 가치의 결정체다. 농부의 땀과 정성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할 때, 비로소 우리의 식문화도 정서적 풍요로움을 되찾을 수 있다.
자연의 변덕 속에서도 다시 밭으로 나아가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의 숭고한 정의(情意)를 기억하라. 당신이 오늘 삼킨 그 한 입은,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바쳐 키워낸 가장 따뜻한 시간이다.

ESG로 로컬의 미래를 그리는 전략가, 신진주 농업 ESG 칼럼니스트 신진주
농업과 ESG(환경·사회·거버넌스), 그리고 지역 소멸 대응 전략을 결합해 지속 가능한 로컬의 해법을 제시하는 ESG 전문 칼럼니스트이자 IP(지식재산) 전략 연구자이다. 단순히 이론에 그치는 ESG가 아닌, 데이터와 현장 정책을 바탕으로 '현장 회복을 위한 환경(E)과 생태', '소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S)', '투명한 거버넌스(G)와 의사결정구조'가 어떻게 지역 소멸의 절벽에 선 농촌을 구할 수 있는지 분석하고 현장에서 연구하며 솔루션을 통해 농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현장형 연구자이자 칼럼니스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