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os, 기원전 484~425)가 쓴 『페르시아 전쟁사(Greco-Persian Wars)』는 기원전 490년부터 449년까지 50년 동안 벌어진 페르시아와 그리스 도시국가연합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기술하고 있는 책이다. 이 『페르시아 전쟁사』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스파르타군이 주축이 되어 싸운 테르모필레 전투(Battle of Thermopylae)를 묘사한 부분이다.
페르시아의 황제 크세르크세스(Xerxēs)는 아버지 다리우스(Darius) 황제의 뒤를 이어 기원전 481년에 그리스를 침공했다. 당시 크세르크세스가 거느린 병력은 무려 17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원정에 앞서 그리스 도시연합국가들에게 자신의 공격목표는 아테네이므로 다른 도시국가들은 땅과 물만 바치면 절대로 공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의 말을 따랐지만 스파르타를 비롯한 약 30개 도시국가는 아테네와 연합하여 페르시아 군대에 대항해 싸우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 도시연합국가는 전혀 결속되지 않은 오합지졸들이었다. 아테네, 사모스, 코린트, 테베, 스파르타 등은 각기 독립된 나라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리스 연합군은 진격해 오는 페르시아군에 맞서기 위해 육군과 해군으로 임무를 분담하고 진지를 구축했다. 가장 먼저 막을 곳은 그리스 북부의 테르모필레였다. 페르시아 군대가 그리스를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그 테르모필레 요새를 지키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스파르타 국왕 레오니다스(Leonidas)였다. 그 요새 안에는 레오니다스가 거느린 300명의 병력을 포함해 겨우 7천 명의 연합군이 포진하고 있었다. 즉 7천 명의 방어군이 170만 명의 침략군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전쟁은 누가 봐도 패배가 뻔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페르시아군은 엄청난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좁은 협곡 테르모필레를 쉽게 통과할 수 없었다. 3일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페르시아군 2만 명과 그리스 도시연합군 4천 명이 죽어 나갔다. 테르모필레는 “뜨거운 문”이라는 이름이 지닌 뜻처럼 지형이 매우 좁아 페르시아 군대가 전차를 움직일 수도 없었고, 병사들조차 제대로 대오를 지어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 도시연합군은 결국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테르모필레를 사수하다 전원이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그런 테르모필레 전투는 그리스 본토군으로 하여금 재정비할 시간을 주고 해전을 준비할 여유를 줌으로써 결국 그리스군이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테르모필레 전사자들은 그리스의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 승전의 중심에는 스파르타인들이 있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전쟁을 위해 태어나고 훈련되었던 사람들이다. 스파르타 사내아이들은 일곱 살이 되면 모두 아고게(Agoge)라는 병영학교에 들어가 19세까지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는다. 채찍 맞고 견디기 같은 엽기적인 인내심 훈련도 받는다. 그런 훈련과정을 거쳐 19세부터 전투에 투입되며 60세까지는 현역이든 예비군이든 언제든지 실전(實戰)에 투입된다.
스파르타인들의 소망은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었다. 스파르타 남성들은 눈물을 보여서도, 전장에서 물러나서도 안 되며 항복해서는 더욱 안 된다. 테르모필레 전쟁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던 레오니다스(Leonidas) 왕과 왕비가 나눈 한 마디는 스파르타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잘 대변한다. “항복하라. 그러면 너의 나라를 그냥 다스리게 해주겠다”라는 말을 전하러 온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의 사자를 우물에 처박아 죽인 후 레오니다스는 자신의 정예부대 300명을 이끌고 전선으로 떠난다. 왕비는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슬픈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이렇게 말한다. “꼭 돌아오세요. 살아서든 죽어서든.” 레오니다스는 그 말을 받아 왕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죽거든 좋은 남자 만나서 다시 아들을 낳아라. 그래야만 스파르타를 지키는 군인이 한 사람 더 생길 것 아닌가.”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죽었던 사람들이 바로 스파르타인들이었다.
전쟁의 당사자인 군인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징병제를 통해 모병한다. 세계 각국 중 현재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약 75개국에 이른다. 징병제든 모병제든 병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모집하고, 먹이고, 입히는데 소요되는 경제적 뒷받침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물론 무기의 개발이라는 막대한 자금도 전제되어야 한다. 이처럼 전쟁은 경제를 떠나서 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전쟁은 결국 경제전쟁이다.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경제적 강국이 되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공짜 퍼주기로 선심을 쓰면서 국가빚을 쌓아가고 있다. 우선 먹기 곶감이라고 공짜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공짜 돈을 푼만큼 돈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오르고, 부동산값이 오를 때는, 또 그 빚을 갚으라고 세금을 올릴 때는 분명 크게 후회할 것이다. 권력자의 자기 무덤과 국가 무덤을 동시에 파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맞아 우리가 진정으로 자주, 자립, 독립할 길을 모색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마디 하게 되었다.
-손 영일 컬럼

